////
Search
Duplicate
🗃️

일을 만드는 사람과 공을 가져가는 사람 → 이 둘을 멀리하라

모든 관료주의 문제가 자세를 고쳐앉고 웃는 것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모든 문제가 오프라인 상에서 발생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공문과 같은 비대면 상에선 우리는 미소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 그렇다면 이번 제목인 일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가? 관료주의에 있어서 상급자들 아닐까?
공을 가져가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또한 상급자들 아닐까?
우리가 만약 상급자로부터 우리 회사의 문제가 무엇인가에 대해 토론해보자는 공문을 받았다고 생각해보자.
문제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별 의미 없는 권위적인 행위들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그 근원을 알 수 없다는 문제에 부딪힌다.
이 문제는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문제 자체에서 비롯된 문제다.
이런 종류의 문제를 자기 영속적인 문제라고 하는데 이의 대표적인 예가 국제회의다.
미국의 소아마비 구제 모금운동 단체인 마치 오브 다임은 소아마비가 자취를 감춘 후에도 계속 활동하고 있다.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군대가 해산되지 않는다. 멈추어 있는 군대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군대는 아니다. 또한 그들은 고유의 역량을 발휘할 만한 국내 문제들을 찾아내곤 한다.
요컨데, 문제의 궁극적인 근원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다른 말로 하자면 다음과 같다.
문제 해결사들이 사는 세계에서는 왕, 대통령 혹은 학장과 같은 사람들이 문제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원래 문제로 돌아가서 우리의 회사의 문제가 무엇인가에 대한 공문은 어떻게 다룰 것인가?
고대의 선조들은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일을 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이 할 일을 만드는 사람, 일을 만드는 사람들을 멀리하면 만사형통일 것이다.
또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일을 하는 사람과 그 공을 가져가는 사람, 첫 무리에 끼어라. 경쟁이 그다지 치열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문제, 즉 자기 영속적인 문제를 다루기 위해선 위의 교훈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일을 만드는 사람을 멀리하는 것, 즉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충분치 않다. 요즘은 물리적인 분리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결국 우리는 또 다른 자기 영속적인 문제에 대한 공문을 전달받게 될 것이다.
만약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할 것이다.
좋은 내용입니다. 토론해 봅시다.
토론할 시간이 된다면 약속을 만들어서 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