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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협력하는 객체들의 공동체

객체지향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하게 된다면 “객체지향이란 실세계를 직접적이고 직관적으로 모델링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라는 설명과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핵심은 현실 속에 존재하는 사물을 최대한 유사하게 소프트웨어 내부로 옮겨오는 작업이기 때문에 결과물인 객체지향 소프트웨어는 실세계의 투영이며 객체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에 대한 추상이라는 것이다.
아쉽게도 실세계의 모방이라는 개념은 객체지향의 기반을 이루는 추상적인 개념을 설명하는 데는 적합하지만 유연하고 실용적인 구체적 관점에서 객체지향 분석, 설계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객체지향의 목표는 실세계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역할은 단순히 실세계를 소프트웨어 안으로 옮겨담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제시한 문제의 요구사항에 들어맞는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처럼 실세계의 모방이라는 개념이 실제론 비현실적임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이유는 뭘까? 이는 이런 추상적인 비유가 객체지향의 다양한 구체적인 면들을 이해하고 학습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객체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현실 세계의 생명체에 비유하는 것은 상태와 행위를 캡슐화하는 소프트웨어 객체의 자율성을 설명하는 데 효과적이다.
현실 세계의 사람들이 암묵적인 약속과 명시적인 계약을 기반으로 협력하며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과정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하는 객체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
실세계의 사물을 기반으로 소프트웨어 객체를 식별하고 구현까지 이어간다는 개념은 객체지향 설계의 핵심 사상인 연결완전성을 설명하는 데 적합한 틀을 제공한다.
실세계의 모방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실무적인 관점에서는 부적합하지만 객체지향이라는 용어에 담긴 기본 사상을 이해하고 학습하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다.

협력하는 사람들

커피 공화국의 아침

커피 공화국의 아침 시간, 카페테리아는 커피를 주문하려는 손님들과 그들에게 커피와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캐시어, 바리스타의 열정으로 가득차있다.
모든 음료 주문은 손님이 커피를 주문하고 캐시어가 주문을 받고 바리스타가 커피를 제조하는 과정을 거친 후에야 완료된다.
커피 한잔을 주문하는 이 작은 이벤트를 완성하는 데도, 여러 사람의 조율과 조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암묵적인 협력 관계가 존재한다.
또한 이런 이벤트가 정상적으로 처리되는 이유도 각 객체에게 주어진 역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손님, 캐시어, 바리스타는 주문한 커피를 손님에게 제공, 혹은 주문을 완료하기 위해 협력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한다.
커피 주문이라는 협력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커피가 정확하게 주문되고 주문된 커피가 손님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맡은 바 역할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역할, 책임, 협력은 우리가 삶을 영위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요청과 응답으로 구성된 협력

사람들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와 마주치면 문제 해결에 필요한 지식을 알고 있거나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수의 사람 혹은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 사람에 대한 요청이 또 다른 사람에 대한 요청을 유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요청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요청을 받은 사람은 주어진 책임을 다하면서 필요한 지식이나 서비스를 제공한다. 즉, 다른 사람의 요청에 응답한다. 요청이 연이어 발생하기 때문에 응답 역시 요청의 반대 방향으로 연쇄적으로 전달된다.
즉 우리는 요청응답을 통해 협력한다.

역할과 책임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과정 속에서 특정한 역할을 부여받는다.
역할은 어떤 협력에 참여하는 특정한 사람이 협력 안에서 차지하는 책임이나 임무를 의미한다. 어떤 사람이 손님이라는 역할을 맡았다면 그 사람은 커피를 주문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역할이라는 단어는 의미적으로 책임이라는 개념을 내포한다. 특정한 역할은 특정한 책임을 암시한다.
캐시어는 주문 내용을 바리스타에게 전달할 책임과 커피가 준비됐다는 사실을 손님에게 알릴 책임이 있다.
바리스타는 커피를 제조할 책임이 있다.
역할과 책임은 협력이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필요한 핵심적인 구성 요소다.
사람들이 협력을 위해 특정한 역할을 맡고 역할에 적합한 책임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몇가지 중요한 개념을 제시한다.
여러 사람이 동일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역할은 대체 가능성을 의미한다.
책임을 수행하는 방법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한 사람은 동시에 여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역할, 책임, 협력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협력하는 객체들

지금까지 설명한 실세계의 커피를 주문하는 과정은 객체지향의 핵심적이고 중요한 개념을 거의 대부분 포함하고 있다.
앞선 사람이라는 단어를 객체로 에이전트의 요청을 메시지로 에이전트가 요청을 처리하는 방법을 메소드로 바꾸면 객체지향이라는 문맥으로 옮겨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객체지향을 설명하기 위해 실세계의 모방이라는 은유를 차용하는 이유다.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며 협력하는 객체들

사람들은 커피 주문과 같은 특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서로 협력한다.
협력의 핵심은 특정한 책임을 수행하는 역할들 간의 연쇄적인 요청응답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객체지향 설계라는 예술은 적절한 객체에게 적절한 책임을 할당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책임은 객체지향 설계의 품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책임이 불분명한 객체는 어플리케이션의 미래 역시 불분명하게 만든다.
역할은 관련성 높은 책임의 집합이다. 객체의 역할은 사람의 역할과 유사하게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여러 객체가 동일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역할은 대체 가능성을 의미한다.
각 객체는 책임을 수행하는 방법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하나의 객체가 동시에 여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협력 속에 사는 객체

객체지향 어플리케이션의 윤곽을 결정하는 것은 역할, 책임, 협력이지만 실제로 협력에 참여하는 주체는 객체다.
객체는 협력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덕목을 갖춰야 하며 두 덕목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1.
객체는 충분히 협력적이어야 한다.
객체는 다른 객체의 요청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객체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외부의 도움을 무시한 채 모든 것을 스스로 처리하려하는 전지전능한 객체(god object)는 내부적인 복잡도에 의해 자멸하고 한다.
2.
객체는 충분히 자율적이어야 한다.
자율적이라는 단어의 뜻은 자기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어떤 일을 하거나 자기 스스로를 통제하여 절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물이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진다면 우리는 그 사물을 자율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상태와 행동 함께 지닌 자율적인 객체

객체를 흔히 상태와 행동을 함께 지닌 실체라고 정의한다.
이 말은 객체가 협력에 참여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수행해야 한다면 그 행동을 하는데 필요한 상태고 함께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객체의 자율성은 객체의 내부와 외부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객체의 사적인 부분은 객체 스스로 관리하고 외부에서 일체 간섭할 수 없도록 차단해야 한다.
객체의 외부에서는 접근이 허락된 수단을 통해서만 객체와 의사소통해야 한다. 객체는 다른 객체가 무엇을 수행하는지는 알 수 있지만 어떻게 수행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자율적인 객체로 구성된 공동체는 유지보수가 쉽고 재사용이 용이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협력과 메시지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협력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손님은 캐시어에게 주문된 커피를 요청하고 캐시어는 바리스타에게 커피 제조를 요청한다.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다.
객체지향의 세계에서는 오직 한 가지 의사소통 수단만이 존재한다. 이를 메시지라고 한다.
한 객체가 다른 객체에게 요청하는 것을 메시지를 전송한다고 말하고 다른 객체로부터 요청을 받는 것을 메시지를 수신한다고 한다.
객체는 협력을 위해 다른 객체에게 메시지를 전송하고 다른 객체로부터 메시지를 수신한다. 따라서 객체지향의 세계에서 협력은 메시지를 전송하는 객체와 메시지를 수신하는 객체 사이의 관계로 구성된다.
이때 메시지를 전송하는 객체를 송신자라 부르고 메시지를 수신하는 객체를 수신자라 부른다.

메소드와 자율성

객체가 수신한 메시지를 처리하는 방법을 메소드라고 부른다.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메소드는 클래스 안에 포함된 함수 또는 프로시저를 통해 구현된다.
어떤 객체에게 메시지를 전송하면 결과적으로 메시지에 대응하는 특정 메소드가 실행된다.
⇒ 결과적으로다. 메시지에 일대일 대응하는 함수는 자바에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바에서는 메소드라고 한다.
메시지를 수신한 객체가 실행 시간에 메소드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와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언어를 구분 짓는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다.
외부의 요청이 무엇인지를 표현하는 메시지와 요청을 처리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인 메소드를 분리하는 것은 객체의 자율성을 높이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이는 캡슐화라는 개념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객체지향의 본질

객체지향이란 무엇인가? 다음은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모두 종합하여 객체지향의 개념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객체지향이란 시스템을 상호작용하는 자율적인 객체들의 공동체로 바라보고 객체를 이용해 시스템을 분할하는 방법이다.
자율적인 객체란 상태행위를 함께 지니며 스스로 자기 자신을 책임지는 객체를 의미한다.
객체는 시스템의 행위를 구현하기 위해 다른 객체와 협력한다. 각 객체는 협력 내에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며 역할은 관련된 책임의 집합이다.
객체는 다른 객체와 협력하기 위해 메시지를 전송하고, 메시지를 수신한 객체는 메시지를 처리하는데 적합한 메소드를 자율적으로 선택한다.

객체를 지향하라

한 번쯤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지배한다는 언어결정론을 들어본적이 있을 것이다.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에선 클래스가 그러하다.
우리는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을 설명할 때, 클래스를 먼저 떠올리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물론 중요한 개념이긴 하지만 클래스는 객체를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임에 지나지 않음을 기억하자.
객체지향의 핵심을 이루는 중심 개념은 객체다. 자바스크립트 같은 프로토타입 기반의 객체지향 언어는 클래스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객체가 존재한다.
⇒ 여기선 상속의 개념도 클래스가 아닌 객체 간의 위임(delegation)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한다.
지나치게 클래스를 강조하는 프로그래밍 언어적인 관점은 객체의 캡슐화를 저해하고 클래스를 서로 강하게 결합시킨다.
훌륭한 객체지향 설계자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할 첫 번째 도전은 코드를 담는 클래스의 관점에서 메시지를 주고 받는 객체의 관점으로 사고의 중심을 전환하는 것이다.
클래스의 구조와 메소드가 아니라 객체의 역할, 책임, 협력에 집중하라. 객체지향은 객체를 지향하는 것이지 클래스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